본문 바로가기

Diary

첫 먹기 명상

5월 14일


중간고사 기간이 지나고, 슬슬 더워지기 시작하는 5월 중순, 마음 챙김 명상 시간에 먹기 명상이라는 것을 배웠다. 말 그대로 음식 하나하나 음미하면서 그 음식을 어떻게 느끼고 받아들이는 지를 알아보는 명상법이다. 평소 우리가 알고 있는 명상과는 전혀 다른 느낌의 명상이라서 첨에 이 명상법에 대해 들었을 때엔 '세상에는 별 명상법이 다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평소처럼 수련하기 전에 잠깐 바디스캔을 하는 시간을 가졌다. 평소 장이 안 좋은 나는 그 날도 소화불량에 시달렸었다. 아랫배가 바늘로 콕콕 찌르듯이 아팠고, 급하게 학교 언덕을 올라오느라 머리에서 땀이 흐르는 것이 느껴졌다. 또 등 쪽이 땀으로 축축하게 젖어 옷이 등에 달라붙은 것을 느꼈다. 그 느낌이 불쾌하고 답답했지만 강의실 안의 시원한 에어컨 바람이 팔다리 살결을 부드럽게 스치는 것이 그 불쾌함을 조금 줄여주었다.

 

바디스캔을 한 후 교수님이 학생들한테 건포도 2개와 ABC 초콜릿 2개를 나눠주시며 먼저 건포도 한 개를 이리저리 돌려보며 눈으로 천천히 관찰해보라고 하셨다.

그 동안 빵 속에만 든 건포도(그것도 맛없어서 씹다 뱉은 건포도)만 보다가 건포도만 단독으로 보니 조금 낯설었는데, 이게 과연 그 탱글탱글한 포도 알이 맞는지 의심스러울 정도로 아주 납작한 타원형에 주름이 자글자글했다. 그리고 전체적으로 검붉은 색에 조명과 가까워질수록 붉은 색이 더 눈에 띄었고, 손가락으로 누르면 찌적찌적하는 소리가 났다. 건포도를 코에 갖다 대면 달달하면서도 한약 같은 냄새가 났었는데 어린 시절 할머니 댁에 가면 이런 냄새가 났었다. 정확히 어떤 냄새인지는 감이 잘 잡히지 않았지만 어딘가 익숙한 냄새였다.

다른 건포도 1개를 혀에 갖다 댔을 때 단맛이 확 느껴졌는데 그 동안 빵 속의 건포도만 먹어봐서 몰랐는데 건포도는 생각보다 달고 맛있었다. 그리고 씹을 때 조금 끈적거리는데 치아 사이사이에 건포도 쪼가리가 낀 느낌이 들어서 조금 찝찝했다. 솔직히 이 묘한 식감이 맘에 들지 않는다.

 

건포도 관찰을 끝낸 후, 바로 ABC 초콜릿 관찰에 들어갔었는데 내가 받은 ABC 초콜릿에는 각각 'K''7'이 음각으로 새겨져 있었다. 손가락 한마디만한 ABC 초콜릿을 요리조리 만져보는데 포장지의 바스락 거리는 소리가 듣기 좋아서 계속 포장지만 만졌다. 그리고 포장지에는 초코가 조금씩 묻어있었는데 초콜릿을 만지면 만질수록 초콜릿이 빨리 녹아서 포장지에 초콜릿이 많이 묻게 된다. 그리고 초콜릿 포장지의 양쪽 끝을 잡아당기면 묶인 포장지가 풀리면서 가장자리가 둥근 직육면체의 ABC 초콜릿이 나오게 되는데 건포도와는 달리 굳이 코에 갖다 대지 않아도 달달한 향이 콧속으로 들어왔다. 초콜릿이 녹기 전에 바로 입 안에 넣었는데 넣자마자 강한 단맛이 혀끝에서부터 퍼지면서 바로 입안에 침이 고였다. 빠르게 녹은 초콜릿이 매우 끈적거려서 입안이 텁텁하고 혀를 움직이기가 힘들었다. 건포도와는 달리 목구멍으로 넘긴 후에도 뒷맛이 오래 남았고 그 끈적거림이 계속 입안에 남았다.

 

이렇게 첫 먹기 명상을 마쳤는데 스마트 폰이나 TV를 보면서 식사를 하는 게 일상이라 이런 명상 자체가 엄청 생소하면서도 색다른 느낌이었다. 평소에 자주 접하는 건포도와 초콜릿인데도 가까이서 천천히 살펴보니까 평소에는 눈치 챌 수 없었던 새로운 점을 발견하게 되었다. 또 맛이 평소보다 더 강하게 느껴져서 어딘가 낯설고, 동시에 이렇게 만들어지기까지 수많은 공정을 거쳐 왔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작은 것 하나에 수많은 사람들과 기계의 손길이 이어졌다 생각하면 이 넓은 세상엔 수많은 역할이 있는 것 같아서 조금 기분이 나아지기도 한다. 아무튼 새로운 경험을 한 것 같아서 조금은 나은 하루였다.

'Diary' 카테고리의 다른 글

제스쳐 드로잉을 해야하는데  (0) 2018.07.11
순맥카레 레시피  (0) 2018.07.08
명상수첩 정리2  (0) 2018.06.19
오랜만의 외출  (0) 2018.04.30
지금까지의 명상 수업 일지 정리  (0) 2018.04.16